- 전시 제목 : ROMANTIC OASIS
- 전시 작가 : 닥설랍 (Dacsurlap)
- 전시 기간 : 2025년 1월 10일 (금) - 2025년 2월 9일 (일) (관람 시간 : 11:00 - 18:00)
📍휴관 일정 : 월요일 정기 휴관, 1월 28일 -30일 설 연휴 휴관
- 전시 장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7 길 18-4, 러브컨템포러리아트
*아래 링크로 가시면 작품리스트를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luvcontemporaryart.com/romanticoasis
[전시 서문]
러브컨템포러리아트는 2025년 첫 전시로 닥설랍 작가의 세번째 개인전을 1월 10일(금)부터 2월 9일(일)까지 개최한다. 작가는 소셜미디어 속 현대인의 초상이 기록된 시각적 형태들을 탐구해왔다. 초창기 ‘Oasis’ 시리즈에서 영화, 빈티지 사진 속 다양한 이미지를 자신이 본 세계로 표현했다면, 이어진 ‘Burry Romanticism’ 시리즈에서 이미지 속 낭만을 꺼내어 로맨스의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랑에 빠진 낭만적인 감정을 닥설랍 특유의 거칠면서도 따스한 회화적 질감으로 표현한다.
닥설랍 작가는 사랑의 황홀함과 예술의 자극에서 삶의 목적을 발견한다. 사랑의 고조된 감정과 창작의 충동 모두 격렬한 생명력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욕망이다. 즉흥적인 발상을 캔버스 위로 옮겨내는 닥설랍의 작업 스타일은 날 것의 영감이 아름다움으로 선명하게 탄생되는 과정이며, *디오니소스적 감성이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힘을 통해 삶의 본질적 에너지를 표현하는 것과 유사하다. <SPRAY FLOWER> 작품의 쭉 뻗어 나간 선에서 응축된 힘을 느끼듯, 디오니소스적 감성이 예술의 형태로의 전환되며 전율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사랑을 할 때 느끼는 고양감과 암울함의 감정 기복 곡선이 차가운 색과 따뜻한 색의 대비로 극대화된다. 꽃, 말, 연인, 비를 상징적 도상으로 사용하여 작가의 감정과 기억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보이는 패턴인 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선물하는 장면은 마치 사랑을 속삭이는 고백처럼 보인다. 이처럼 고대 신화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다뤄져 온 사랑 이야기를 작가가 품은 낭만으로 새롭게 보여준다.
사랑은 질리지 않는 오래된 이야기이다. 사랑은 시시각각 변하며 유동적이어서 그 모양이 서로에게 쉽게 전이된다. 우리는 전시장에서 닥설랍의 사랑의 모양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작품 속 사랑의 감정이 당신에게 스며들어, 피어나는 꽃처럼 만개하길 바란다.
[작가소개]
닥설랍 (b.1999)는 젊은 세대의 감각과 독창성을 대변하는 90년대생 작가로, 이번이 러브컨템포러리아트 갤러리와 함께하는 세 번째 개인전이다. 그는 이국적인 색채와 거친 회화적 질감을 구현하며, 스프레이를 회화적으로 표현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정립하였다. MZ세대는 물론 중장년층에 이르기 까지 폭넓은 계층의 관심을 받고 있다. 닥설랍의 회화적 질감은 거친 스프레이 터치와 섬세한 디테일이 공존하며 관객의 감수성을 자극시킨다.
[작가노트]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우울함이 지속되었다.
하루하루의 즐거움이 내 삶의 의미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단기적인 즐거움의 장기적 반복은 단순히 삶이 의미를 찾는 고뇌를 머릿속에서 지우는 것에 불과하다.
삶의 의미, 그딴 것 없을지도 모르겠다.
저마다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고있다.
내가 왜 이 불행한 세상에 태어났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 생각을 계속해봐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가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럼 내 삶은 의미가 없는 삶인가.
내 삶의 의미는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
내가 찾아야 한다.
짧은 삶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내 삶을 뒤돌아 봤을 때 내게 의미 있는 자극을 준 것은 예술과 사랑이었다.
예술이 주는 다양한 자극들은 이런 예술을 만들고 싶다는 내 삶의 목적성을 내게 만들어준다.
더불어 사랑이 주는 자극들은 모든 불안감을 잊게 해주는 황홀감을 전해준다.
내게 자극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는 삶처럼 느껴진다.
편안함은 지루함으로 느껴지고, 지루함은 우울감을 불러일으킨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끊임없는 사랑과 예술의 자극이 내 삶에 생명성을 부여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는 태생부터 지금까지 자극을 쫓는 삶을 살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예술의 형태가 일반적으로 선정적으로 인식되는 형식이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였을까 싶다.
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집을 처음 봤을 때 충격을 잊을 수 없다.
그 어떤 사진작가의 작품보다 가장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작품들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 그랬고, 마광수의 작품이 그랬다.
프랜시스 베이컨, 베르나르 뷔페, 조지 콘도의 페인팅이 그랬고,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가 그랬다.
그들은 예술에 생명을 부여하는 진짜 예술가들이다.
그들의 작품들은 그 어떤 작품들보다 생명력이 넘친다.
그리고 그들의 작품속에서는 내가 추구하는 사랑의 형태가 엿보인다.
사랑하자.
이것저것 재지 말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 사랑하는 것에 집중하자.
예술은 폭발이라 말한 오카모토 타로의 철학처럼 매 순간 폭발하는 생명 본연의 자세를 가지려 노력하자.